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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9-03 11:43: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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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가는 자기돌봄을 위한 모든 스펙트럼을 가진 놀라운 도구다. ‘돌봄이라는 말이 자신을 위한 단어가 아니라 늘 남을 위해 쓰이는 말이 되는 사람은 지금부터 하는 이야기에 귀 기울여 보자


갓 태어난 아기를 돌본다고 할 때, 아기의 무엇을 돌본다는 말일까? 혹은 귀여운 반려동물을 돌본다고 할 때 무엇을 돌보아야 하는 것일까? 이처럼 자기를 돌본다고 할 때는 자신의 무엇들을 돌봐야 하는 것일까?

아기를 돌본다고 할 때는 우리 누구도 아기가 돌봄이 필요한 대상이 아니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아기는 혼자서 먹을 수도, 혼자서 화장실을 갈 수도, 물을 떠 마실 수도, 걸어 다닐 수도 없으니까.

그야말로 숨 쉬는 것, 입에 들어오는 것을 본능적으로 빨고, 마시고, 먹는 것 외에는 모든 것을 돌봐주는 이에게 의존해야 한다.

인간은 동물과 달리 거의 1여 년간을 타인에게만 온전히 의존해야만 하는 상태로 태어난다. 아기는 전적으로 타인에게 의존하는 관계 그리고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통해 신체와 뇌가 성장하도록 만들어졌다.

아기를 돌본다는 것은 먹이고, 재우고, 배설한 것을 치우고 씻기고, 온도와 습도까지 신경을 쓰는 등 신체가 건강할 수 있는 모든 환경을 신경 써서 제공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게 다일까? 물론 아니다. 이밖에도 너무 중요한 돌봄의 역할이 있다.

아기를 관찰하면서 무엇이 불편한 것은 없어 보이는지, 어떤 기분인지, 무엇을 원하는지 등 아기의 내적인 요구와 필요를 민감하게 알아차리는 정서적 돌봄이 중요하다.

아기의 내적인 필요와 요구에 적절히 잘 대응한 보호자는 아기와 관계의 질이 매우 높다. 아기는 보호자를 매우 좋아하고 잘 따른다. 이것이 인간관계 발달에 있어 중요한 애착신뢰의 시작이다. 아기의 내적인 요구나 필요에 적절하게 잘 대처한다는 것은 건강한 정서적 돌봄을 제공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돌봄이란 행위는 기본적으로 육체적, 정신적인 두 가지 측면에서 존재한다.

그렇다면 아기가 아닌 우리 자신을 돌본다는 것은 육체적, 정신적인 면에서 어떤 식으로 돌봐주어야 하는 것일까? 나를 돌봐주는 대상이 누구여야 할까? 이는 우리 자신의 건강과 행복뿐만 아니라 삶의 질과도 관련된 매우 중요한 질문이다.

개인 상담이나 치료 중 만나는 이들의 대부분이 사실은 자기돌봄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혹은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본 연구소를 찾게 된다. 이것은 너무 마음이 힘든 상황에서 자신의 부정적인 마음에 압도되어 전혀 자신을 돌볼 힘이 없다든지, 우울한 생각이 계속 들고 우울한 감정에 짓눌려 자신에게 해로운 생각이나 행동을 거듭하고 있는 등과 같은 상태를 말한다.

늘 기분이 좋고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만 들고, 불편한 게 조금도 없고, 행복하고, 항상 넉넉하기만 한 환경만 펼쳐지는 그런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아마 여러분 마음속에는 아주 부자들은 안 그럴 거야라고 생각하겠지만, 부자들도, 만인이 부러워하는 연예인도 마찬가지다.

삶에서 우리가 원치 않는 여러 자극과 상황, 사건을 마주하며 우리의 감정은 부정적인 기분에 휩싸인다. 자신에게 해가되는 혹은 스트레스를 주는 상황에 지속적으로 노출된 사람들은 자신의 몸과 마음이 무엇보다도 자기돌봄이 최우선으로 필요한 상태가 된다.

자신의 여러 내적 외적 환경을 잘 관리하고 조절할 수 있는 사람들은 타인의 돌봄이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스스로 잘 먹고, 잘 자고, 좋은 환경을 자신에게 제공해 어려움이 없다면 그 사람의 삶의 질은 높고 행복도도 높아진다. 하지만 자신의 내적 외적 환경이 스스로 통제할 수 없고, 조절할 수 없다면 그 사람은 자신의 상황과 어려움에 압도당하게 된다. 이때 우리 자신은 스스로를 도울 수 없는 상태가 된다. 힘들 때는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하다. 상담자나 치료자, 의사 선생님 또는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가족, 친구 등이 필요하다. 그러나 성인은 매 순간을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는다. 우리가 아플 때, 힘이 들 때 그 순간만큼은 타인의 존재는 중요하고 필요하다. 자기돌봄이 되지 않을 때 타인이 우리를 돕도록 하는 것도 용기이고 지혜이다.



요가는 어려울 때 자기를 돌보는 도구라기보다는 평상시에 자신을 어떻게 돌봐서 정작 어려움이 있을 때 어떻게 최소한의 영향을 받고 이를 안전하고 안정되게 통과할 수 있을지에 대한 경험과학이다.

인간은 변화하는 내적, 외적 환경에 따라 자신의 호흡부터 달라진다.

쁘라나야마는 이러한 호흡의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평소에 잘 훈련함으로써 살아가면서 겪는 여러 불운과 불행, 좌절 앞에서도 자신의 호흡을 가다듬고 자신의 마음과 몸이 덜 요동치게 한다.

요가 아사나 훈련은 평소에 자신의 몸을 잘 알고 돌보게 함으로써 어떤 스트레스 앞에서도 강건하고 탄성으로 이겨낼 수 있는 외적·내적인 조건들을 경험하도록 돕는다.

요가의 이완훈련은 긴장할 수밖에 없는 어려운 상황 앞에서도 자신을 이완하고, 나아가려는 용기와 지혜로움을 학습한다.

요가명상은 평상시 자신의 생각과 마음, 육체에 대해 거리를 두고 관찰 할 수 있는 힘을 길러, 내적·외적인 상태나 환경과 자신을 동일시하지 않도록 도와준다.

이러한 비동일시가 몸에 젖으면, 우리가 당면한 어려움 속에 머물거나 고착되어 좌절하기보다는 이 어려움 또한 삶과 함께 흘러가는 것이며, 영원하지 않고 변화하는 흐름 속에 있다는 깨달음과 긴 시간의 스펙트럼으로 자신의 어려움을 대할 수 있게 된다.

모든 요가의 방법들은 나에게 닥쳐오는 어려움을 위해 고안된 것은 아니지만, 우리의 일상 속에 삶의 질을 높이고, 진정한 자기돌봄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하는, 깊고 다양한 인간의 이해로 만들어진 오랜 영적인 경험과학이다.

요가인이라면 이러한 오랜 경험과학의 지혜가 자신의 삶에 깊이 뿌리내려 주변의 사람들에게 아사나를 통한 건강한 육체나 아름다운 몸에 대한 돌봄뿐만 아니라 정서적인 돌봄의 중요성도 나누어야 한다.

이것이 오늘날 한국 요가의 대중화가 이루어진 시점에 우리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하는 부분이다. 진정한 아사나 수업은 해부학적인 이해로 이루어지는 아사나 보다는 정서적인 이해와 심리학적, 요가과학적인 이해를 통한 아사나 수업으로 대체되어야 한다. 여기에 요가의 이완과 요가명상이 더해져야 진정한 요가수업을 할 수 있다.

이러한 요가수업은 여러분의 삶에 진정한 자기돌봄이 무엇인지를 알려 주고 어떠한 어려움에서도 크게 동요하지 않고, 자신을 잘 돌볼 수 있게 하는 담대한 인물과 인품을 가진 사람으로 나날이 성장하게 한다. 그런 사람은 빛을 가지게 된다.

진정한 요가의 빛이 한국 요가계의 곳곳에서 타오르길 기도합니다.“


writer. 차승희(차승희심리요가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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