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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기사등록 2018-09-21 11:2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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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계 미국인 필라테스 마스터, 원정희 박사가 한국에 살고 있었을 때는 그 어느 곳에도 필라테스 스튜디오도 없었다고 한다. 그러나 유학 후 미국 뉴욕대학교를 통해 필라테스를 알게 되었고 그녀는 필라테스를 모국인 한국에 도입하리라고 마음먹게 되었다.

이후 그녀는 세계로 필라테스 강좌를 시작했다.




Q 어린 시절에 대해서 이야기 좀 해주세요.

A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났고 네 명의 언니와한 명의 오빠가 있어요. 저는 어릴 적부터 무용을 했어요. 저는 어머니께 공부하기가 싫어 요. 대입 점수가 좀 낮아도 대학을 갈 수 있게 차라리 예능계를 하겠어요라고 말씀드렸고 발레를 선택하여 무용과로 대학을 진학했어 요. 경희대 입학 시에는 현대무용으로 전향했 습니다.

Q 1988년 올림픽 개막식에 참가하셨다고요?

A 대학교 3학년 때였는데 저희 교수님들 중김백봉 교수님이 계셨어요. 한국 신무용의 창시자로 불릴 수 있는 유명하신 분이었어요. 그분의 지도로 경희대 무용과 모든 학생이 88올 림픽 개막식에 참가했습니다. 개막식 전 거의 1년간 훈련했고 모두 열심히, 즐거운 시간을 보낸 걸로 기억합니다. 모든 세계가 지켜보는 가운데 춤을 춘다는 것은 정말로 떨리는 일이 었죠. 나라에서 소정의 수고료도 지불되었고 상장, 작은 시계, 훈장도 받았어요. 간식과 점심도 받고요. 정말 좋은 추억이죠.

Q 졸업 후 어떤 일을 하셨나요?

A 10개월간 롯데월드 특수 공연부에서 일 했어요. 롯데월드 메인 가든 스테이지 무대에서 무용수로 그리고 매직 아일랜드 무대에서 ‘Back to the 50’s’ 주역 샌디 역할을 했습니 다. 영화 그리스를 변조하여 만들어진 50년 대풍 쇼이죠. 하루 3~4회 공연했고 체력이 많이 요구되는 직업이었어요. 저희 특수 공연부에 두 명의 미국인 무용수들이 있었는데 무척 가깝게 지냈고 그들 숙소에서 파티도 하곤 했어요. 그들을 보면서 언젠가 미국에 한번 가서 무용수로의 경험을 상상해 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정말 가게 되었죠.

1993년에 뉴욕대학교 석사과정에 입학하게 되었어요. 뉴욕대에는 두 가지 무용 프로그램이 있는데 하나는 실질적 무용에 관한 커리큘 럼이 있고 다른 하나는 교육 대학원입니다. 앞으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확신이 안 선 상태에서 전 교육대학원을 선택했습니다. 이 커리큘 럼에서 무용 이외에 무대 관련 조명, 의상, 프로덕션, 비평, 안무, 미학, 생리학, 움직임 분석(Laban Movement Analyze), 의상, 음악, 다른 신체 관련의 여러 많은 종류의 소매틱 (Somatic) 등을 접할 수 있었어요.

첫 학기 수업에서 필라테스를 접하게 되었는데 강사 선생님은 위 타이 홈(Wei-Tai Hom)이 었고 훗날 알았지만 그분이 필라테스 강사 자 격증 프로그램(초급 시스템 프로그램)을 미국 최초로 시도했었다는 것을 알았을 때 무척 놀랐습니다. 그 당시 과목명은 필라테스가 아니라 이상하게도 ‘Dance Alignment’였어요. 필라테스란 이름이 Trade mark가 걸려 있어서 사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졸업 후에 알았어요.

전 그렇게 필라테스를 처음 접하게 되었지만 그때는 그다지 관심이 없었어요. 동작도 이상 했고 어떤 동작은 제가 무용수임에도 불구하고 잘 안되었거든요.

Q 졸업 후 무엇을 하시게 되었나요?

A 무용을 계속했어요. 뉴욕의 모든 무용수들이 그렇듯이 오디션도 보러 다니고요. 어느 날무용 센터에서 거울에 비친 제 모습을 보고 갑자기 깨달은 것은 무용수로서 나이가 들어 간다는 것이었습니다. 슬픈 일이죠. 예술세계 에서 생명력이 가장 짧은 무용수라는 직업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또한 세계 곳곳에서 내로라하는 무용수들의 집결지인 뉴욕에서 무용을 한다는 것이 쉬운 것만은 아니었고제 스스로도 서서히 흥미를 잃어가고 있었어 요. 뉴욕에서 작은 무용 공연을 마친 어느 날공연을 본 뉴욕대 동창 일본 친구가 제게 얘기했어요. "필라테스 강사가 돼 보는 게 어때? 공연을 보니 체력도 좋고 아주 잘 어울릴 것같아" 뉴욕대 시절, 필라테스를 두 학기나 필수 과목으로 들어서 모르는 건 아니었지만 무용 세계를 떠나 다른 신체 관련된 것을 해보고 싶다는 찰나, 그녀를 따라서 필라테스 전문 강사 프로그램 학교인 뉴욕 필라테스 스튜디 오를 방문했습니다.

필라테스 창시자 죠세프 필라테스의 수제자인 로마나 크리자노스카 선생님이 헤드 마스터로 강사 트레이닝 프로그램의 교수라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졸업 후 뒤늦게 필라테스 자격증 프로그램에 신청서를 제출, 후에 입학 오디션을 위해 사전 교육을 받기 시작했어요. 입학 전에 이미 필라테스 테크닉을 배워, 본 세미나 교육에서는 지도 방법을 중점으로 수업을 듣고 메디컬 인턴십처럼 정해진 시간을 채워야 하고 세 번에 걸친 시험을 통과해야 했거든요. 결코 쉬운 코스는 아니었지만 좋아하는 그 무언 가를 배운다는 건 언제나 설레고 즐거웠어요.

필라테스 스튜디오에서 놀랐던 순간은 은색빛 머리카락을 가진 많은 남녀 노인들이 마치 체조선수처럼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습이었어 요. 그 모습을 처음 본 저는 결심했어요. '이 필라테스 테크닉을 꼭 배워 나도 저렇게 나이 들었을 때 신체 노화 고통에서 벗어나 저렇게 자 유로이 움직이리라.' 또한 필라테스 기구 중에 캐딜락이라는 기구를 봤을 때, 무용수로서 신체 움직임에 능숙했던 저는 그 기구만을 보고도 알았어요. 그 기구에서 움직이는 동작이 상상이 되면서 신체 단련을 시키는 기구 중 정말 놀라운 기구라고 느꼈지요.

실제 필라테스와 무용을 겸비하면서 제 몸에서 일어나는 신기한 경험을 했어요. 자세, 몸매는 물론 큰 근육이 없는 채로 근력과 활력 이외에 당당함과 자신감의 정신적 향상까지도 오더군요. 무용을 접고 필라테스로의 전향은 진실로 쿨한 선택이었어요. 당연히 몸에 익숙한 예전의 무용 트레이닝은 필라테스를 할 때엄청난 도움이 되었습니다.




Q 로마나 선생님과의 지냈던 상황은 어땠습니까?

A 그 당시 교육생들의 지정 장소는 두 군데였 는데 74가 브로드웨이가 본사, 로마나 선생님이 계신 곳은 드라고스 짐(Drago’s Gym)이라고 565애비뉴에 있는 곳이었습니다. 교육 생들은 이 두 곳을 다니면서 공부를 했어요.

로마나 선생님에 대한 이야기는 이미 너무나도 많이 들어왔고 만날 날을 기다리며 떨렸어 요. 필라테스 분야에서 유명세를 이미 세계에 떨치고 계신 분이셨고 죠세프 필라테스의 제자들 중 죠세프의 스튜디오를 유일하게 이어 받은 분이셨습니다. 입학 후 드라고 스튜디오를 처음 간 날 엘리베이터에서 내려 로비에서 서성거렸습니다. 매일 아침 7시에 로마나 선생 님이 출근을 하신다는 이야기를 듣고 저도 미리 일찍 그곳에 갔죠. 낯선 학생이 로비에 있는 것을 발견하신 로마나 선생님이 제게 바로 다가오셨습니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제 이름은 정희이고 새 교육생입니다. 오늘 처음 이곳에 왔는데 어떻게 무엇을 하는지 잘모르겠습니다.”

난 로마나입니다.”

안녕하세요 로마나 선생님. 만나 뵈어서 무척 영광입니다.”

여기는 내 딸 사리고요. 저쪽이 탈의실이고 가방은 이쪽에 두면 되고 스튜디오로 와서 관찰을 시작하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로마나와의 첫 만남은 지금도 잊을 수 없습니 다. 첫눈에도 왠지 범상치 않은 나이 드신 할머니 모습이었는데 한눈에 바로 존경심이 우러나더군요. 첫 만남에도 꼿꼿이 두 다리와 손을 앞으로 가지런히 모으고 바로 선 자세로 눈을 똑바로 응시하며 또박또박 천천히 말씀을 하시는 그 모습은 엄해 보이면서 따뜻한 느낌이 었고 그녀의 눈빛은 보석처럼 투명하게 반짝 거렸습니다. 로마나 선생님은 그 오랜 세월 동안 일반 사람들과 교육생들을 지도하며 정말 바쁘게 일하셨고 그 와중에도 따뜻하게 절 반겨 주심에 감동했어요.

수많은 제자들과 학생들이 오가는 무척 바쁜 스튜디오에서 행동 하나하나가 정확하고 필요한 지적만 하시고 그야말로 필라테스 운동처럼 컨트롤(제어)’이 일상 활동과 말과 몸에도 붙은 그런 분이었어요. 사람이 너무 많을 때의 드라고 스튜디오는 정말 시장 같았습니다. 뉴욕뿐만이 아닌 다른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오고 가던 스튜디오였고 20여 년 넘게 드나드는 충성 고객도 상당히 많았어요. 심지어 돌아 가신 죠세프에게 직접 레슨받던 회원들까지도이 스튜디오를 다녔으니까요. 게다가 많은 유명 사업가들, 예술가들, 음악인들, 연예인들도 이곳을 다녀갔습니다.

그렇게 로마나 선생님과의 첫 만남이 있던 그날 놀랍게도 우연히 레슨을 받게 되었습니다.

한 시간이 캔슬이 생겼는데 로마나 선생님이 그 많은 교육생들 중 제게 갑자기 레슨받아볼 래?” 하셨어요. 옆에 교육생들의 부러움을 사고 첫 레슨을 받기로 했습니다. 심장이 터질 듯했죠. 선생님은 첫 동작부터 제 몸에 대해서 바로 아시더군요.

요즘 무용은 잘 되어가고 있니?” 전 바로 용기 내서 대답했어요. “무용은 그만두었어요. 이제 필라테스 강사를 하려고요.”

로마나 선생님께서는 매일 오후 1시에 일을 마치시고 간혹 교육생들에게 질문을 던지십니 다. “오늘 무엇을 배웠니?” 몇몇 교육생이 바로 대답을 못하면 화를 내셨어요.

그 오랜 시간 동안 앉아서 아무것도 못 배웠 다니 말도 안 돼.“ 가끔 시간을 내셔서 교육생 들을 모아 질문에 답해 주시는 시간을 가졌습 니다. 늘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주로 선생님의 대답은 몸에 좋단다혹은 잘 모르겠네, 그몸에 대한 케이스가 내 눈앞에 없어서 뭐라고 답해줘야 할지였어요.

그러나 전후에 알았어요. 로마나 선생님의 답이 정말 맞아요. 필라테스는 몸에 좋습니다. 무슨 말이 더 필요할까요. 경험을 해봐야 알죠.

병원에 직접 찾아가서 의사들의 여러 진단 아래 병명, 원인 그리고 치료 방법 등 알려 주잖 아요. 똑같아요. 내 눈앞에 그 몸을 봐야 무엇 이 문제인지 그리고 어떻게 교정을 할지 혹은 어떻게 더 발달시킬지를 알게 되고 저희는 어떻게 운동을 시킬지 판단을 하죠. 로마나 선생 님의 티칭은 마술쇼를 보는 것 같아요. 선생님의 두 손안에서는 모든 것이 해결됩니다. 학생 들은 하나라도 놓칠까 봐 노트를 들고 열심히 적습니다.

그 연세에 그 누구보다도 에너지가 넘치고 불같은 열정을 엿볼 수 있었어요. 지금도 우리 로마나 제자들은 아직도 이야기합니다. 우리 스승이 영혼 깊이 남겨준 열정은 아무도 못 따라 간다고요. 제 생각엔 백 년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그런 분이라고 감히 비유합니다. 지금은저 멀리 가셨지만 우리 제자들은 아직도 스승 따라 하기에 급급하죠. 정말 평생 잊지 못할 멋진 사람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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